기억하자.. 대구 지하철 참사. 20년...
L.O.V.E/그리움 2023. 2. 18. 23:42 |
아이랑 서점을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중앙로 지하철을 내리니..
고인들의 사진들이 벽에 붙어있었다...
아.....
잊고 있었다...
벌써 20년이 되었구나...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떨어진다..
나는 그 시절을 살았기에 가슴에 사무치는 슬픔을 어찌 할 수 없다.
그 사고의 피해자가 나였을수도 있다.
그저 우리는 그들보다 운이 좋았을 뿐.
우리의 이웃들. 동네 아저씨였을수도, 동네 아주머니였을수도.
동네 동생들, 동네 언니 오빠들..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그 남학생도...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기 저기서 전화가 걸려왔고..
시내 지하철역 인근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운 연기와 냄새가 진동을 했다..
대학교 때 좋아하던 남학생이 있었다.
한번도 말을 붙여본 적도 없었다.
체육과 학생이었다.
내 생전 그렇게 잘생긴 아이를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같은 단과 건물을 사용했기에 지나가다 자주 얼굴을 봤다.
친구들과 지나가다 그 남학생이 곁을 지나가면
나의 마음을 알던 친구들은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고 나는 그렇게 그를보며 늘 설레었다.
2년동안 그러했다...
2년동안 그 남학생만 보면 이유없이 그렇게 설레었다.
고백 한 번 해보지 않았다.
그럴 생각도 못해봤던 것 같다.
곁을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그렇게 설레었는데..
친구들이 그 남학생이 그 지하철에 타고 있었다고 했다...
아직도 그 남학생 얼굴이 눈에 선하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훤칠한 키..
그는 한 눈에 띄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고 이후 한동안 시내를 나가지 못했다.
시내를 나가도 지하철 역 인근을 갈 생각도 못했다..
너무 슬프고 가슴아파서..
사고 후 어느 날 언니가 지하철역에 추모를 하러 간다고 했다.
힘든 발걸음이었다..
지하철 역 앞은 온통 피해자를 추모하는 백합과 꽃다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하철 역 입구는 참담할 정도로 새카맣게 그을러있었다.
중앙로 역 지하철 입구에서 지하철까지는 한참 멀다.
두 층을 내려가서도 조금 더 내려가야 지하철을 타는데
입구부터 새카맣게 그을러져 있어 그날의 비극이 다시 떠올랐다.
이런 비극적인 참상 앞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운이 좋았다는게 죄송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아무 죄 없는 선량하고 평범한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었는데..
저 액자 근처 피해자의 유족들이 몇 분 앉아계셨다..
그 어떤 말도 건넬 수 없었다..
백합을 하나 올리며 기도를 드렸다..
그날부터 20년동안 너무 감사함을 잊고 이렇게 살아왔다고..
그저 죄송한 마음이라고..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그곳에선 편안하시라고...
울며 기도를 하는 내 모습을 우리 아이는 그저 멀뚱히 쳐다보았다..
목이매여 그 날의 사고를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그 비극을 어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이렇게 가슴이 아프고 먹먹한데..
유족자들의 후속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기사가 수두룩하다..
심리치료를 연간 40만원 지원했는데 그 마저도 기간이 끝난단다...
정신과에 가보면 한번 상담을 받는데에도 10만원 훨씬 넘어가는데..
말도 안되는 지원이다..
유족자들. 그리고 그 참상에서 살아남은 부상자들..
평생 그 괴로운 기억을 안고 살아갈텐데..
그리고 그 연기를 마시고 후두쪽에 후유증이나 병이 생긴 사람들도 정말 많았을텐데..
우리는 너무 무관심했다.
우리는 단지 그들보다 운이 조금 좋았을 뿐인데..
감사함을 잊은 채 피해자들에게 너무 무관심했다..
20년동안 그 지옥에서 그들은 어떻게 버티었을까..
그들에겐 삶이 살아가는게 아닌
죽지 못 해 살아내어야 했던.. 버티어야 했던 삶이 아니었을까...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날의 비극을....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대구시가 어떤 욕을 먹어야 그들에게 지원을 늘릴것인가..
너무 슬픈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