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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8.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감사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삶은,, 선물이다.

이렇게 설명하지 않고는 어떻게 내 삶을 설명 할 수가 없다.

 

최근 너무나도 빡빡한 스케쥴에.

몸이 후줄근하게 늘어져 어디 머리만 닿으면 그저 졸음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쉬는날을 앞둔 마지막 스케쥴.

아,, 도저히 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회사에 전화를 할까 말까 한참을 침대 머리맡에 앉아 고민만 하다

또.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항상 이런식이다.

생각이 많으면 행동력이 떨어진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또 힘겹게 세수를 하고 대충 얼굴에 분을 찍어바르고

돌돌이 가방을 끌고 또 집을 나섰다.

 

회사에 가니 또 그럭저럭 기분이 좋아진다.

짧은 섹터니 즐겁게 하고 오자며 나 스스로에게 힘찬 퐈이팅을 외치며.

 

브리핑에 가보니 이미 파김치가 되어 얼굴이 죽상이 되어있는 루마니언이 하나 앉아있다.

"Good morning."을 외쳐도 대답도 없다. ㅡ,.ㅡ

얼굴표정, 그 시선이 사람을 진짜 기분 나쁘게 한다.

뭐야 이거..

오늘 마인트컨트롤하기 진짜 힘들겠다는 예감이 먹구름처럼 몰려오는......

역시.. 오늘은 오지 말았어야 했나..

 

언젠가부터 이런 예감이 드는 날엔 나 스스로가 더 조심을 한다. 매사에.

이런 날은 특히 실수하기 좋은 날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사무장은 이런 내게 맞춤형 포지션을 준다..

'assistance' 포지션이 없다. 일명 깍두기인 셈이지. 이것저것 하고싶은 일 하면 되는. ㅋㅋ

 

하지만 오늘 깍두기 포지션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오늘 비행하는 기종엔 크루좌석보다 크루 한명이 더 많다.

나머지 자리없는 한명은 착륙과 이륙때 조정석의 빈크루좌석에 앉아야 한다는 것.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늘 비행은 올때 갈때 모두 만석이다.

보통 승객이 적으면 조정석까지 가지 않고 빈 승객좌석에 앉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안되겠다.

무조건 flight deck으로 gogo.

 

하.하.하..

진짜 운이 좋다.

조정석에서 착륙, 이륙을 경험하는 것도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은데.

게다가 낮비행이니 전망도 장난 아니겠다. 큭큭..

 

오늘 내가 갔다온 곳은 중동 오만의 Salalah라는 도시.

내가 어릴때 '시간탐험대'라는 만화가 아주 큰 인기를 끌었었는데 그 만화에 샬랄라 공주가 나왔었다.

이 샬랄라공주가 이 도시의 지명을 딴게 아니었을까 싶다.

도시명이 살랄라라니.. ㅋㅋㅋㅋㅋ 너무 깜찍하다.

 

하늘에서 본 살랄라..

사진을 남길 수 없었던게 한이 될 정도로 아쉽지만 그 전망은 마치..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 전망과 비슷했다.

사막의 거대한 암석계곡이 웅대하게 펼쳐져 있었다.

계곡골짜기엔 언젠가 물이 흘러내렸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그 규모는 장대했다.

 

아,, 정말 인생은 선물이구나.

오늘 그렇게나 몸이 힘들고 피곤하고 심지어 비행까지 그렇게 힘들더니.

또 이런 멋진 경험을 내게 선물해 주시려고 그러셨나.

역시,, 신의 존재란...

아직 그 어떤 종교에도 심취해있지는 않지만 신의 존재를 믿는 나는 매 순간 그 존재를 경험한다.

특히 이런 특별한 선물을 받는 날에는 더 더욱.

 

내가 가진 행복만큼 불행이. 그 불행만큼 또 다시 행복이 온다는 말이.

인간의 몸을 빌어 신이 하신 말씀이 아닐까 싶을만큼 내게 와닿는 말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새하얀 구름위로 떠 있는 눈부신 해.

주변에 보이는건 새하얀 구름밖에 없는데 그 구름위에 솟아있는 해를 보고 있자니

나의 이 미미한 존재가.

정말 작고 사소한 일들에 연연했었던, 나의 작은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이토록 인간의 마음은 작고 이 광대한 자연에 비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데.

우리는 또 더 아무것도 아닌 일들에 마음을 쏟고 힘들어하고 서로를 미워하며 보내는 시간들이 얼마나 덧없는지.

 

얼마 전 밤비행에서 우연히 조정석에 들어갈 일이 있었던 내게 캡틴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이렇게 비행을 하고 있노라면.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다니고 있노라면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들인지 깨닫게 되노라며. 

인간들이 얼마나 작은 일들에 힘들어하고 연연해하며 사는지, 다투고 미워하며 사는지..

그런 것들 모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라며.

 

문득 캡틴이 해주셨던 그 말이 떠올랐다.

 

아마 내게 이런 것들을 깨닫게 해주시려 신은 나를 이곳으로 보내주신건지.

 

그래. 좀 더 편안하게 살아도 되겠다.

좀 더 많은 것들을 놓으며 살아가도 되겠다.

그렇게 모든 것들을 움켜쥐려 매 순간 내 온 몸에 힘을 주고 있기 보다는 좀 더 편안하게 있어도 되겠다.

어짜피 그렇게해도 내 것이 될 것들은 내 것이 되고, 내 것이 되지 않을 것들은 언젠가 내 손을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굳이 힘겹게 손에 움켜쥐고 있지 않아도...

 

착륙과 이륙을 하던 내내 기장과 부기장은 센터와 신호를 주고 받았다.

지금은 상공 몇 피트인지, 속도는 얼마인지, 작은 하나들 까지도.

그들은 모든 버튼들을 점검하며 check, check, check을 연발한다.

상공 2500피트라고 센터에서 알려주던 순간 기장은 랜딩기어를 내렸다.

우르릉--- 하며 랜딩기어가 내려오는 소리.

캡틴은 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싱그런 웃음과 함께 신호를 주신다.   

캡틴과 퍼스트오피서 모두 너무 인품 좋은 사람들이라 이 비행은 정말 선물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쵝오!!!!!!!

정말 쵝오!!!!!!!!!

 

이런 내 모든 경험들.

정말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이런 행복들이, 추억들이. 또 내 인생의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게 만드는 큰 힘이 된다는 걸.

그러니 이젠 나를 속상하게 만드는 그런 작은 것들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을 거라는 그런 다짐을 하게 만드는..

 

감사합니다.

언제나...

인생은 모든 순간이 선물인 것을..

심지어는 나를 힘들게 만드는 그 순간들 조차도.

 

 

 

Posted by 요조숙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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